손끝의 시간

알파콜렉티브 기획전시 <프로젝트 테> 첫번째
양유전 개인전
《손끝의 시간》
2025.06.27(금)- 07.27(일)
(6월 27일 오후 6시 오픈)
오전 11시 - 오후 8시 (매주 월요일 휴관)
알파콜렉티브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51-14
손끝의 시간
기록은 인간이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감각하고 이해하려는 가장 오래된 표현 형식 중 하나다. 선사시대 동굴 벽화는 사냥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성공을 염원하는 주술적 행위이자, 집단의 경험을 형상화된 기억으로 남기려는 시도였다. 동굴의 거친 표면에 안료를 문지르고 돌을 쪼아내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신체적 감각은 세계에 직접 각인되었다. 이러한 사고와 물질을 매개하는 손을 통한 기록 행위는 수천 년간 인간의 표현 활동을 관통하는 중요한 원리로 작동하였다. 회화, 조각, 공예에 이르기까지, 창작자의 신체적 개입은 작품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결정적 조건이었으며, 아우라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이 오래된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오늘날 이미지는 알고리즘을 통해 즉시 생성되고, 무한히 복제되며, 전 지구적으로 유통된다. 인공지능은 수 세기에 걸쳐 축적된 창작의 문법을 단숨에 습득하여 화풍과 기법까지 모방해 낸다. 데이터의 계산이 감각의 축적을 대체하고, 기계적 학습이 신체적 숙련의 속도를 압도하며, 시각 문화의 지형도를 개편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이 발생한다. 알고리즘이 창작의 속도를 높일수록, 숙련을 통해 체화된 감각의 정밀성과 시간의 농도는 오히려 더 강렬한 갈망의 대상이 된다. 이는 디지털 환경에 피로를 느낀 동시대 감각이 점점 더 물질적이고 촉각적인 경험을 갈망하게 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반복과 체화, 우연과 감각의 조응으로 형성되는 장인의 손길은 바로 이러한 감각적 결핍을 채우는 하나의 예술 실천으로 작동한다. 반복을 통해 체화되는 숙련, 재료를 매만지는 손의 감각, 우연과 의도가 교차하는 창작의 순간들ㅡ이 모든 요소들은 디지털이 재현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을 구축한다.
강원도 무형문화재 채화칠장 소하(素荷) 양유전이 60여 년간 쌓아 올린 '칠화칠기(漆畫漆器) 세계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물음에 대한 구체적 응답이다. 정제된 옻과 안료를 혼합해 기물 표면에 세밀한 붓질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색을 덧입히는 전통적 기법에서 칠기와 회화, 물성과 서사의 층위가 긴밀히 교차한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옻과 광물 안료의 까다로운 조건 속에서, 양유전은 재료의 미묘한 성질을 읽어 내고 그에 맞는 압력과 속도를 정교하게 조율해 낸다. 한 번의 섬세한 붓질에는 옻의 점도, 안료의 농도, 기물의 곡면, 그날의 습도까지 무수한 변수가 응축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알고리즘이 예측하거나 재현할 수 없는 물질과 행위의 고유한 시간성이다. 양유전의 칠화칠기에서 우리는 감각과 시간이 재료 안에서 겹겹이 축적되어 만들어 낸 물질의 언어를 목격한다.
그의 작업은 생성적 인공지능 시대에 감각의 축적과 물질적 수행을 통해 형성된 창작적 사유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다.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장인의 손길은 기계적 복제가 소거한 아우라적 유일성을 되찾는다. 본 전시는 양유전의 평생에 걸친 탐구를 통해, 디지털 복제와 알고리즘 생성의 시대에 고도로 전문화된 장인의 수공적 실천이 제기하는 근본적 질문들을 함께 사유한다. 우리는 양유전의 손길을 따라가며, 손의 감각과 물질의 조응이 만들어 내는 비가역적 경험, 즉 장인의 시간이 지닌 밀도의 의미를 우리 각자의 감각 속에서 되살려 낼 수 있을 것이다.
This exhibition contemplates the questions raised by master artisan Yang Yujeon's highly specialized manual practice—chilhwa chilgi, cultivated over sixty years—in an era shaped by algorithmic generation and digital replication. Working with lacquer and mineral pigments acutely responsive to shifts in temperature and humidity, Yang calibrates each gesture with precision.
A single brushstroke condenses lacquer viscosity, pigment density, vessel curvature—even the day's humidity—manifesting an embodied temporality no algorithm can replicate. Within this irreducible complexity of material and gesture resides a form of intelligence born not of calculation, but of decades of intimate dialogue with matter itself.⠀
전시 서문 - 윤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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